신명기 1:26-33

 

백성들이 원망한다. 전투를 해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족속과 아낙자손을 보며 자신들을 이끌어낸 하나님을 원망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을 29-33절에서 타이르고, 두려워하지말라고 오히려 용기를 준다.

 

그들이 어떻게 인도받았는지, 애굽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게 하였으며, 광야동안에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였는지를 잊어버리고, 눈앞의 문제로 인해 원망하고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전에 주셨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번주 채플때가 기억난다. 하나님께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것을 기억해야한다고.

 

그렇다. 하나님 처음 만난 그때, 그때의 은혜를 기억하며 계속 삶을 살아가야한다. 분명히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것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이 나를 계속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한다.

 

주님 나에게 원망하는 시기가 올때에, 앞으로는 원망보단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전에 나에게 역사하셨던 것처럼 새로운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고,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소서. 원망하지 않게 하소서.

신명기 1:9-18

 

모세는 사람들을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러가지 일들을 맡긴다.

이 일을 맡기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모세 홀로 이스라엘의 모든 다툼과, 제판 등을 해결할 수 없었다.

  2. 모세의 장인어른 이드로가 모세에게 제안했었다(출 18:13-27).

 

공동체에서 리더 혼자 모든것을 맡을 수는 없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공동체 안에 작은 리더들이 필요하다.

리더들의 조건은 15절처럼 지혜가 있고,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는 자여야 한다. 

 

사실 자신이 일을 다 처리하면 내 맘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해서는 계속해서 리더를 세워가는 일들이 필요하다. 그게 건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데 좋으며, 계속해서 다음세대를 만들어야 공동체가 유지된다.

 

주님 우리의 공동체에 계속해서 리더가 생기게 하소서, 십부장인 리더가 백부장이 되게하시고, 백부장인 리더가 천부장이 되게 도와주소서,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축복, 번성하게 하시고, 복 받길 원합니다. 

요한복음 21:15-25

 

부활하신 예수와 그 제자들이 조반을 먹은 후,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번 묻는다. 여기서 세번은 베드로가 세번 부인함을 생각하게 끔 하는 요소로 예수님께서 사용하셨을 것이다.

 

베드로는 대답하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만일 내가 배신한 친구를 앞에 두고있는데, 그 친구가 나를 향해 '너는 나의 친구야' 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껄끄러울까.

 

제목은 변함없는 예수님의 사랑이다. 배신한 베드로를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 사랑이 베드로를 돌이키게 하였을 것이다.

 

오늘 나에게 꽂인 구절은 19절이다.

 

요 20:19 이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여기서 베드로가 맞이하는 죽음은 십자가에 달려 순교하게 됨을 암시한다고한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올려드린다는 말이 참 내 맘에 와닿는다.

 

사실 이번주 고등부로 인해 사역이 어려워져서, 맘이 고단했다. 그러나 나의 고난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께 영광올려드리는것, 죽음으로도 하는데, 이거 조금 어려워서 어쩌겠는가.

 

현재 상황이 어렵다는것은, 하나님이 일하심을 체험하게끔 상황을 만들어주시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하나님께 더욱 의지해라 라는 신호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사역을 왜하는걸까, 굳이 힘든 일을 왜 하는걸까

그 이면에는 예수의 사랑이 있음에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힘이 나려면 예수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애정결핍이다. 주님 나는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실 예수의 사랑은 언제나 넘처나는데 내가 받아먹질 못하는것 같습니다.

해야할 사역들이 너무 많습니다 주님. 주님의 사랑이 나에게 필요합니다. 주여 내가 사랑받는다는걸 알게 하소서.

시편 8:1-9

 

시편 8: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우주의 창조자임을 언급하고 있다. 오늘의 큐티 제목처럼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을 본다.

 

시편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렇다면 우주에서는 인간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 우주의 크기를 알려주는 한 커뮤니티를 보았다.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은 우리 은하계 정도만을 생각했지만 현재 측정 가능한 수치는 우리 은하계에서 465광년을 더 하고도, 계속 지금까지도 팽창 중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간은 작고 작은 존재이다. 우주적으로 볼 때는 우리는 하나의 먼지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 우주를 만든 하나님이 사람이 무엇이 간데 사람을 사랑하시고, 사람을 돌보신다.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한테서 중요한 것일까.

 

그 사실을 깨달은 화자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의 이름에 아름다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에 아름다움을 선포한다.

 

주님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주신 삶, 이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하시고, 주님이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주님의 아름다움 깨닫길 원합니다. 나만의 시편으로, 나만의 기도로, 주님께 내 마음을 올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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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12

 

어제 제목이 복된 길, 헛된 길이였는데 오늘도 비슷하게 복된 인생, 헛된 인생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하나님과 언약백성들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이 관경을 보시고 웃으신다라고 하였다.

 

시편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왜 하나님께서 웃으심이 자꾸 상상이 되는걸까

 

너까짓게 나와 나의 백성들의 유대를 끊을 수 있어? 라고 생각하시는거 같다. 너까짓게라는 말의 어감이 딱히 좋지는 않다만..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인간은 창조물이다. 창조물이 절대 창조자를 넘어 설 수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과 때어놓기 위한 수단과 방법들은 헛된 인생임을 제목에서 말해준다.

 

그렇다면 복된 인생이란 무엇일까?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이 복된 인생이다.

 

시편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또한 나를 깨트릴 자들,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나를 괴롭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시편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오히려 대적할 힘을 주시고, 그렇게 명령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참 복된 인생을 받아간다.

 

시편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할렐루야. 주님을 즐거워할지로다. 주님을 찬양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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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청소년기 시절에 어머니께 성경 어디를 읽어야 하냐고 물어보면, 시편 잠언을 추천해주셨다. 그때에는 이 부분들을 왜 추천해주셨지 라는 생각이었으나, 20대 후반으로 들어오는 지금 세월을 조금 먹었는지 읽을 때마다 잔잔한 감동을 준다. 

주일학교 수련회에서는 외워야만이 밥을 먹을 수 있기에 어쩔수 없이 뇌에 박히게끔 외웠지만, 지금에 와서는 시편 1편을 자발적으로 외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사람들이 시편을 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말씀을 붙잡고 싶기 때문에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는 악인의 길에 따르지 않길 원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고 싶다. 20살 초반, 나는 사회에 나가면 크리스천답게 모든 것을 정직하게 하여 주님을 따라야지 하였지만, 정작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삶, 타협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하다.

 

주의 율법을 즐거이 묵상하는 것. 하나님과 깊은 교재를 나누는 것. 그분의 뜻을 알아가는 것. 이게 복이다.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누릴 수 없는 복, 악인의 길을 따르기 위해 항상 분주해하는 이들에게는 누릴 수 없는 복. 바로 주님을 묵상함이다. 늘 감사하며 그 삶을 누리는 삶. 

 

세삼스례 당연하다고 여겨진 잊어버렸던 감사함이 자연스럽게 다시 터져 나오는 그런 큐티였다.

 

한줄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교재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이 삶을 누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또한 주야로 묵상하며 주님과 더 깊어질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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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3:1-27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하나님은 심판과 회복의 주권자이시다.

겔 43:3 그 모양이 내가 본 환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환상과 같고 그발 강가에서 보던 환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

 

나는 여기서 하나님의 권위를 보았다. 하나님은 회복시키시기도 하지만 심판하시기도 한다. 이 두 액션을 취하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시다. 

 

2. 하나님은 예배하는 법, 회개하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겔 43:12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 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성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죄로부터 부끄러워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가르쳐주신다. 하나님은 '너 죄지었으니까 너는 심판받야해!' 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 아니다. 백성이 죄를 지으면 회개하도록 돌이키는 방법도 알려주시고, 가끔 이방나라를 통해 혼내키시기도하신다.

  만일 하나님이 심판자의 역할만 하였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지 않을터, 우리가 부끄러움속에서도 주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의 본체 예수님의 피값으로 우리를 심판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에 가능하다. 

 

심판하시는 하나님도 맞지만, 사랑의 하나님이 동시에 존재하신다.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부끄러움을 넘어 지켜 행해야한다.

겔 43:10 인자야 너는 이 성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이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11 만일 그들이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성전의 제도와 구조와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라

예전 큐티에도 우리는 죄 앞에서 부끄러워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라고 말한적이 있다. 죄를 부끄러워 하는것, 우리가 느껴야 할 일이다.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하나님과 멀어지며, 죄를 부끄러워 할수록 하나님과 다가갈 수 있다고 믿고있다.

 

한발 나아가, 하나님은 부끄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든 율례를 알게하고, 법도를 지켜서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물론 우리는 다 지킬 수 없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하기만 하면 안된다. 오늘도 죄와 싸우고, 죄에 넘어지면 부끄러워 하면서 다시 주님께 다가가기 힘써야 하는것, 그게 우리가 해야할 일인듯 하다.

 

2. 지키기에 힘써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자!

겔 43:27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한줄기도.

주님. 하나님은 심판과 회복의 주권자이심을 다시 묵상하게 됩니다. 또한 저를 가르침으로써 저를 부끄럽게 하사 또 한번 제가 죄인인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 제가 부끄러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말씀을 지키기에 힘쓰길 원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제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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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0-42장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사로잡힌지 스물다섯째 해에, 에스겔에게 하나님이 환상중에 성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완공된 성전을 측정하며 알려주셨다.

 

왜 이러한 방법을 택하였을까??

 

현재 상황에 대입해 보았다. 만약 내가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내 집이 없어진 상황에서, 앞날을 생각하는 것이 힘들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환상중에 집을 보여주신다면? 나는 건축공학과가 아니기에 정확한 측정방법은 모르나, 환상중에 천사가 내가 회복되어 만들어진 집을 같이 돌아다니며,

 

"여기는 거실인데 엄청 넓지? 앞으로 너가 사용할 곳이야, 베란다좀봐, 그리고 여기가 너의 안방이고, 이곳은 너의 서제야"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실패한 인생에서 소망을 품고, 희망을 품게 되지 않을까??

 

소망없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복될 성전은 자신의 집이 생기는 것보다, 나라가 회복되고, 성전이 회복되는 기대감을 줄 수 있었던것 같다.

 

그렇다. 하나님은 소망과 회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실패한 인생 같아도, 다시 회복시키고, 절망가운데에 소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나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겔 40:4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

둘째,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나의 공동체에게 전달하는것.

 

 

 

주님, 건조하고 희망없는 우리 공동체에 회복과 부흥을 원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공동체의 회복을 보이시어, 꿈을 같게 하시고, 비전을 같게 하소서, 보는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닌 공동체에 희망을 전달하여 소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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