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교회 청년부 회장으로부터 소그룹리더들을 위한 매뉴얼을 요청받았다. 새롭게 새워진 소그룹리더들이 많은데, 소그룹도 이끌면서, 말씀도 전달해야 하는데, 소그룹리더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청년부의 소그룹을 이끈지가 약 6년 정도 되지만(심지어 이건 새발의 피다), 소그룹을 이끌때마다 항상 어렵다. 특히 새로 시작하는 연초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니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풀어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매뉴얼이 필요한 이유는, 리더마다 가지고 있는 자질과 소양이 다른데, 매뉴얼이 있으면 공동체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소그룹을 이끌기 위한 메뉴얼을 만들어 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0. 비전품기&리더소양 갖추기

0.1. 하나님께 부름받은 소명 확인하기

뚜렷한 목표가 있을때에 그 목표에 따라서 움직일 수가 있다.  

    ● 자신의 소명 생각하기

       - 교회에 겉도는 자들을 품는 자가 되어야겠다

       - 공동체에 헌신하고 싶다

       -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겠다.

       -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 공동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가야겠다.

       - 헌신하는 친구들, 동역자들을 도와 공동체에 도움이 되어야겠다.

 

 

0.2 빚진 마음.

"우리는 섬김이 늘 은혜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섬김을 통해서 자란다."
출처 : 당신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인가? 

우리가 누구에게 섬김을 받아 리더가 된 만큼, 우리가 공동체를 섬김으로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도와야 한다. 

우리의 영적성장을 함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일학교를 거치면서 우리를 섬겨주었던 선생님들의 헌신과 섬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받은 사랑이 있는 만큼, 우리가 그 사랑을 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셨다. 이에 우리도 예수께 받은 사랑을 혼자 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을 흘려보내야 한다. 사랑을 받은 자는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선교단체가 아닌 이상, 사람은 적은데 일해야 할 곳은 많으니, 다양한 이유로인해 어쩔 수 없이 리더를 맡을 경우가 있다. 그 사람들 중에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은 채로 리더를 이끌어갈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은 먼저 남들의 영적 성장보다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여 주시라고 자신의 영성을 두고 계속 기도해야 할 것이다.

 

0.3 태도

- 유재석이 되어라!

- 살짝의 하이텐션을 유지.

 

 

1. 교제

  - 소속감

  - 수직적 친밀감? 수평적 친밀감?

  - 깐부 만들기(부리더)

  - 아이스브레이킹

    . Good & Bad

    . 너도?나도!

    . 두루마리 휴지 자기소개

    . 텔레스트레이션

    . 아웃팅

 

 

2. 말씀 - 사회와는 다른 공동체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 말씀 회상 및 요약

  - 주보 질문 활용

  - 부가적 설명(간증 시 일반화 금지)

  - 다른 사람에게 은혜받았던 것 질문 전체를 대상으로 "은혜받은 것을 나누어주실 분 계신가요? -> ooo이 나눠줄 수 있을까요??"

  - 삶에 적용하기*

 

3. 마무리

  - 궁금한 것 질문받기

  - 기도제목 나누기

  - 같이 기도하기

 

 

'기독교이야기 > 사역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틴QT 활용법  (0) 2020.05.12
제자훈련 시작  (0) 2020.05.10
찬양단 지체들에 대한 분석  (0) 2020.04.30

https://m.blog.naver.com/jeounggh/221958260690

하나님은 요즘 내가 속한 단체들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신다.

 

이렇게 일관될 수가 없다.

 

DFC의 루틴QT도 오늘 새로 시작한 청년부의 제자훈련도

'오늘 하루 나와 함께 교재하는 삶을 살았니?'

'오늘 내가 선물한 하루에 계획적이고,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았니? '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나는 '아니요...' 라고 대답한다..ㅋㅋㅋ

 

박사과정에 오고나서 내가 안주한 삶을 살고 있으니, 자꾸 내가 속한 단체들을 통해 하나님이 날 체계적인 삶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훈련시키는 듯 하다.

 

신기한것은, DFC와 교회에서 하는 각각의 프로그램이 서로 상호보안을 해주어서 완성도가 증가했다(그렇다고 내가 이 프로그램들을 잘 하고있다는 아니다)

 

----

 

오늘 교회 청년부에서 제자훈련이 시작했다.

 

할일이 너어어어어무 많아 부담도 많이 됐지만, 사실 뒤에 앉아서 혼자서 설레고 있었다.

 

제자훈련을 통해 사랑의교회 청년들이 봉사위주의 신앙생활에서 조금은 벗어나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QT, 4장성경읽기, 독후감, 기도, 구절암송 등등.. 해보지 않았던 청년들에게는 쉬운것은 아닐것이다. 대학교시절 선교사님 앞에서 하기 싫다고 펑펑 운적도 많으니.. 학부생때 많은 훈련을 받고도 결국 남은 하나는 QT묵상이지만, 그거라도 붙잡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이번 제자훈련을 통해 청년들이 봉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만큼, 하나님과 교재하는 시간을 우선순위에 둘 수 있는 청년부가 되길 기대해본다. 또한,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 기쁘시게 해드리는 날을 기대해본다.

이 글은 정답이 아니다. 공동체의 찬양단 리더라면 한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생각들을 적어본다. 수도권 혹은 대도시처럼 음악전공자들이 많은 곳이 아니라, 평범한 지역교회임을 가정한다. 사실 내가 경험한 곳은 여기 뿐이다

교회 찬양단의 맴버들이 어떻게 해서 찬양단에 들어오게 됬는지에 대한 분석을 해본다. 이들이 타의에 의해 참여와 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참여로 나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를 “수동적 참여”와 “능동적 참여”라고 나누어보고 싶다.

“수동적 참여”의 끝판왕은 피아노 반주자들이다.

보통 어중간한 크기의 교회에서는 피아노 반주자를 키워내는 것이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예배와 행사는 많아서 각 예배마다 반주자가 필요하다만, 지역교회의 반주자 공급은 항상 부족하니 몇 없는 반주자들이 돌아가면서 반주를 맡게된다. 또 이런 유형의 반주자들은 주일학교에서부터 오랫동안 해왔던 지체일 가능성이 크다. 어렸을때부터 계속해서 피아노 반주를 맡다보면, 어른들에게 눈에 띄게 되고, 예배든 행사든 반주가 필요해 반주자들에게 요청이 들어오면 어른들의 부탁이므로 쉽게 거절할 수 없게된다. 피아노 반주 요청을 하는 입장에서는 반주자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어떠한 상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요청하는 쪽이 한둘이 아니니, 반주자들이 요청을 수락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피로가 누적되고, 아무리 영적으로 충만한 지체더라도 이러한 육적 스트레스가 영성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번아웃은 시간문제이다.

우선 나는 이런 유형의 지체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한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순종의 자리에 나아갔다라는 것, 나의 상태보다 공동체를 더 우선시 여겼다는 것에 대단함을 느낀다.

그러니 찬양단 리더는 악기 연주자들이 악순환에 빠지지 않게 지도해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래서 관심의 일순위를 피아노 반주자에 둔다(당연히 피아노 반주자 이외에 대체자가 없이 악기로 계속 헌신하는 지체들에게도 관심을 주어야 한다). 반주자의 상태가 어떤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늘 관심을 갖고 이 지체의 맴버쉽을 형성하려 애쓴다. 그래야 혹시나 번아웃이 찾아왔을때, 혹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 리더로서 그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줌으로써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게끔 해야한다. 좀더 근본적인 악순환 해결방법은 나중에 더 생각해보겠다.

“능동적 참여”를 한 지체들을 대할때는 동기가 중요하다. 예배 위원으로서 하나님께 더 헌신하고 싶은 마음, 하나님께 찬양 올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첫번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마음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친한 친구가 찬양단에 있어서 일수도 있고, 교회의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서 일수도 있고, 찬양단에 좋아하는 지체가 있을 수도 있고, 나의 은사를 자랑하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누구는 이러한 동기가 불순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기가 어쨌든 찬양단 안으로 들어왔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찬양하는 마음을 주었다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능동적 참여” 친구들은 욕심이 많다. 나의 은사를 뽐내고 싶어하니, 절제하지 못할때가 많다. 싱어라고 한다면 불필요한 화음을 낸다던가, 전체에 어울리지 않는 튀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은 찬양중에 실험을 한다. 물론 여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는 것은 옳으나 지나쳐버리기 일수라 어울리지 않을때가 많다. 무엇인가 색다르게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찬양단 리더는 이러한 “능동적 참여” 친구들에게는 공동체와 함께 하나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게 방향설정을 잘 지도해주어야 한다. 우선 이들의 시선을 ‘자기자신’보다 ‘공동체’에 시선을 두게끔 해야한다. 사실 이런 지체들은 지적당하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간다. 그렇기에 지도를 할때에 “너 혼자 소리가 너무 커 줄여”, “너 거기서 이 연주 애드립 이상해 빼”라고 지체에 대해 지적하기 보단, “싱어들의 소리와 어울리게 조금 낮춰주세요” 나 “이 곡에는 좀 더 담백하게 연주하는 부분이 좋을 거 같습니다.”라고 계속 공동체 의식을 넣어줄 필요성이 있다. 열성이 있는 친구라고 한다면 오히려 한 파트를 연습시키는 방향으로 지도해주는 편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모든 결론은 ‘기도’가 답이다. 리더라면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관심의 표현은 기도가 된다. 이 친구의 영성을 책임져주세요, 이 친구가 힘들어합니다 도와주세요. 이 친구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한채로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만나주세요 등등. 영혼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

결론 : 기도하자! 제발!

'기독교이야기 > 사역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소그룹을 이끌기 위한 매뉴얼  (0) 2022.01.05
루틴QT 활용법  (0) 2020.05.12
제자훈련 시작  (0) 2020.05.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