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정답이 아니다. 공동체의 찬양단 리더라면 한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생각들을 적어본다. 수도권 혹은 대도시처럼 음악전공자들이 많은 곳이 아니라, 평범한 지역교회임을 가정한다. 사실 내가 경험한 곳은 여기 뿐이다
교회 찬양단의 맴버들이 어떻게 해서 찬양단에 들어오게 됬는지에 대한 분석을 해본다. 이들이 타의에 의해 참여와 자발적인 동기에 의한 참여로 나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를 “수동적 참여”와 “능동적 참여”라고 나누어보고 싶다.
“수동적 참여”의 끝판왕은 피아노 반주자들이다.
보통 어중간한 크기의 교회에서는 피아노 반주자를 키워내는 것이 참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예배와 행사는 많아서 각 예배마다 반주자가 필요하다만, 지역교회의 반주자 공급은 항상 부족하니 몇 없는 반주자들이 돌아가면서 반주를 맡게된다. 또 이런 유형의 반주자들은 주일학교에서부터 오랫동안 해왔던 지체일 가능성이 크다. 어렸을때부터 계속해서 피아노 반주를 맡다보면, 어른들에게 눈에 띄게 되고, 예배든 행사든 반주가 필요해 반주자들에게 요청이 들어오면 어른들의 부탁이므로 쉽게 거절할 수 없게된다. 피아노 반주 요청을 하는 입장에서는 반주자가 영적으로 육적으로 어떠한 상태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요청하는 쪽이 한둘이 아니니, 반주자들이 요청을 수락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피로가 누적되고, 아무리 영적으로 충만한 지체더라도 이러한 육적 스트레스가 영성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 악순환이 끊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번아웃은 시간문제이다.
우선 나는 이런 유형의 지체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표한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순종의 자리에 나아갔다라는 것, 나의 상태보다 공동체를 더 우선시 여겼다는 것에 대단함을 느낀다.
그러니 찬양단 리더는 악기 연주자들이 악순환에 빠지지 않게 지도해주는 역할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래서 관심의 일순위를 피아노 반주자에 둔다(당연히 피아노 반주자 이외에 대체자가 없이 악기로 계속 헌신하는 지체들에게도 관심을 주어야 한다). 반주자의 상태가 어떤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늘 관심을 갖고 이 지체의 맴버쉽을 형성하려 애쓴다. 그래야 혹시나 번아웃이 찾아왔을때, 혹은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 리더로서 그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줌으로써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게끔 해야한다. 좀더 근본적인 악순환 해결방법은 나중에 더 생각해보겠다.
“능동적 참여”를 한 지체들을 대할때는 동기가 중요하다. 예배 위원으로서 하나님께 더 헌신하고 싶은 마음, 하나님께 찬양 올려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첫번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마음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친한 친구가 찬양단에 있어서 일수도 있고, 교회의 공동체에 속하고 싶어서 일수도 있고, 찬양단에 좋아하는 지체가 있을 수도 있고, 나의 은사를 자랑하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누구는 이러한 동기가 불순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기가 어쨌든 찬양단 안으로 들어왔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찬양하는 마음을 주었다라고 생각한다.
또 이런 “능동적 참여” 친구들은 욕심이 많다. 나의 은사를 뽐내고 싶어하니, 절제하지 못할때가 많다. 싱어라고 한다면 불필요한 화음을 낸다던가, 전체에 어울리지 않는 튀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은 찬양중에 실험을 한다. 물론 여런저런 방법을 시도하는 것은 옳으나 지나쳐버리기 일수라 어울리지 않을때가 많다. 무엇인가 색다르게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찬양단 리더는 이러한 “능동적 참여” 친구들에게는 공동체와 함께 하나된 마음으로 찬양할 수 있게 방향설정을 잘 지도해주어야 한다. 우선 이들의 시선을 ‘자기자신’보다 ‘공동체’에 시선을 두게끔 해야한다. 사실 이런 지체들은 지적당하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간다. 그렇기에 지도를 할때에 “너 혼자 소리가 너무 커 줄여”, “너 거기서 이 연주 애드립 이상해 빼”라고 지체에 대해 지적하기 보단, “싱어들의 소리와 어울리게 조금 낮춰주세요” 나 “이 곡에는 좀 더 담백하게 연주하는 부분이 좋을 거 같습니다.”라고 계속 공동체 의식을 넣어줄 필요성이 있다. 열성이 있는 친구라고 한다면 오히려 한 파트를 연습시키는 방향으로 지도해주는 편도 좋은 방법이다.
사실 모든 결론은 ‘기도’가 답이다. 리더라면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관심의 표현은 기도가 된다. 이 친구의 영성을 책임져주세요, 이 친구가 힘들어합니다 도와주세요. 이 친구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한채로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만나주세요 등등. 영혼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
결론 : 기도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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